상대평가 과목은 1등급이 4%로 잘리는데, '쉽다던' 절대평가 영어가 그 밑으로 내려간 겁니다.
2등급까지 누적해도 17.53%. 열 명 중 여덟 명이 3등급 아래라는 뜻입니다.
한 해 삐끗한 게 아닙니다.
표에서 보이듯3년째 이어지는 방향성입니다.
평가원이 영어를 변별 도구로 쓰고 있다는 건 이제 해석이 아니라 관측입니다.
그런데도 수험생들의 시간표에서 영어는 여전히 맨 뒤에 있습니다.
시험은 바뀌었는데 공부 습관만 5년 전에 멈춰 있는 과목, 그게 지금의 영어입니다.
(물론, 수능평가원장의 사퇴와 영어의 고난이도 시험이 언론에 계속 노출되고 있는바, 아직 9월의 결과를 기다려 봐야겠습니다.)
PART 2. 왜 하필 영어에서 방심하는가 — 착시 세 가지
3~5등급 학생들의 하루를 들여다보면, 영어가 밀려나는 이유가 세 가지 착시로 정리됩니다.
착시 ① "90점만 넘으면 되잖아요."
절대평가라 커트라인이 고정이니 만만해 보입니다. 그런데 위 표가 말해주듯, 그 90점을 넘는 인원이 4.13%입니다. 커트라인이 고정이라는 것과 그 커트라인이 낮다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인데, 머릿속에서 이 둘이 섞여 있습니다.
착시 ② "고2 때까진 영어가 제일 잘 나왔는데요."
맞습니다. 고1·고2 학력평가 영어는 실제로 쉽습니다. 그 성적표의 기억으로 고3 영어를 판단하니, 6모에서 등급이 두 개씩 떨어지고 나서야"어 뭐지?"합니다. 그때가 보통 지금, 7월입니다.
착시 ③ "일단 국수탐부터요."
틀린 우선순위는 아닙니다. 문제는 '먼저'가 어느새'만'이 된다는 겁니다. 영어는 시험에서도 점심 먹고 나른한 3교시고, 학원 시간표에서도 뒤로 밀리고, 플래너에서도"시간 남으면"의 자리에 있습니다. 그렇게 넉 달이 지나고, 12월에 INTRO의 그 학생이 됩니다.
착시는 착시일 뿐입니다.
이제 이 방심이 실제로 어디서 계산서로 돌아오는지, 두 개의 전선을 보여드리겠습니다.
PART 3. 경고 1 — 최저 전선: '가장 싼 카드'는 공짜 카드가 아니다
이 시리즈 1편에서 말했듯, 가천대 약술형 논술의 수능 최저는 대부분 모집단위가 '1개 영역 3등급'입니다.
그리고 상담을 해보면 열에 아홉은 그 1개 영역으로 영어를 꼽습니다.
절대평가라 안정적이고, 남들과 경쟁 안 해도 되니까요.
판단 자체는 합리적입니다.
영어는 실제로최저를 맞추는 가장 싼 카드가 맞습니다.
상대평가처럼 남이 잘 보면 내가 밀리는 구조가 아니고, 3등급(70점 이상)은 1등급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적 목표니까요.
문제는'싸다'를 '공짜'로 번역하는 순간입니다.
올해 6모에서 2등급 누적이 17.53%였다는 건, 3등급 라인도 예년의 감각보다 위로 올라와 있다는 뜻입니다. 예전 같으면 "감으로 풀어도 3등급"이던 학생이 지금은 4등급 성적표를 받습니다.
그리고 최저는 잔인합니다.
논술을 아무리 잘 봐도, 최저에서 0.1등급이 모자라면 그 시험지는 채점조차 의미가 없어집니다.
넉 달 준비한 논술 전형 전체가 영어 한 과목에 인질로 잡혀 있는 구조인데, 그 인질범을 "시간 남으면" 상대하겠다는 계획이 말이 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최저 없는 약술형 대학(수원대·상명대 등 9개교)만 쓸 거라면 이 전선은 피해 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음 전선은 아무도 못 피합니다.
(실제로완화된 수능최저를 쉽게 보고'덜'공부한 채로 수능을 봤다가 떨어지는, 교과/논술 전형 학생들이 정말 많습니다. 작년 '영어'로 최저 맞추려던 학생들은 수능 끝나고 좌절했었습니다.)
PART 4. 경고 2 — 정시 전선: 위로 갈수록 가볍고, 당신의 라인에서 가장 무겁다
이게 오늘 글에서 제일 중요한 대목입니다.
정시에서 영어가 반영되는 방식은 대학마다 다른데, 여기에잔인한 역설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표 2] 정시 영어 반영의 역설 (2026학년도 기준 예시)
라인
대학 예시
반영 방식
영어 한 등급의 값
최상위권
서울대
감점제
2등급 -0.5점 — 사실상 무풍지대
최상위권
고려대
감점제
1·2등급 차 3점 — 다른 영역 1문제로 만회 가능
상위권
연세대
비율 반영 (11~16.7%)
1·2등급 차 5점 이상
중위권
이화여대·한국외대·서울시립대 일부
비율 반영 20%
등급마다 환산점수 직격 · 1~3등급 구간 -3점씩
3~5등급의 목표 라인
가천대
비율 반영 20%
4등급부터 -6점씩 추락
일부 대학·학과
성신여대 일부 30%, 동덕여대 일부 최대 50% 등
고비율 반영
영어가 사실상 주요 과목
보이십니까. 서울대 갈 학생에게 영어 2등급은 -0.5점짜리 해프닝입니다.
그런데3~5등급이 실제로 원서를 쓰게 될 라인으로 내려올수록영어는 20%, 25%, 30%짜리 주요 과목이 됩니다.
가천대 기준으로 영어 3등급과 4등급의 차이는 환산 6점.
INTRO의 두 학생을 가른 바로 그 숫자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영어를 가장 안 해도 되는 학생들(최상위권)이 영어를 제일 잘하고,영어가 가장 무겁게 반영되는 학생들(3~5등급)이 영어를 제일 안 합니다.
"영어는 별로 안 중요하대"라는 말은 감점제 대학을 쓰는 상위권의 사정입니다.
그 말이 등급 라인을 타고 내려오면서 주어가 지워진 채 퍼진 거예요.
당신의 라인에서 그 말은 틀린 정보가 아니라위험한 정보입니다.
수시 최저에서 한 번, 정시 환산에서 또 한 번.
영어는 올해 당신의 입시에 두 번 청구서를 보냅니다.
그래서 '주의'가 아니라'경고'라고 쓰는 겁니다.
PART 5. 처방 — 영어는 '투자'가 아니라 '보험'이다
경고만 하고 끝내면 무책임하니, 처방을 드립니다. 핵심 관점부터 바꾸세요.
3~5등급에게 영어는 점수를 불리는 투자 과목이 아니라,입시 전체가 무너지는 걸 막는 보험 과목입니다.
보험의 특징은 두 가지죠.
매달(매일) 꼬박꼬박 납입해야 하고, 납입액 자체는 크지 않아도 된다는 것.
① 매일 30~40분, 고정 납입.
-영어는 감각 유지 비용이 드는 과목이라 몰아서 하는 순간 망합니다. 대신 하루 필요량은 적습니다. 듣기 1회분(또는 독해 6~8문항) + 연계 어휘 30개. 이걸 시간표의 '시간 남으면' 칸에서 빼서 아침이든 자습 첫 교시든고정 슬롯에 박으세요.
협상 불가 슬롯으로.
② 실점 구조부터 진단.
-4~5등급의 실점은 의외로 뒤쪽 킬러(빈칸·순서·삽입)가 아니라 앞쪽에 있습니다. 듣기에서 한두 개, 세부내용·도표·안내문 같은 '주는 문제'에서 서너 개. 여기만 회수해도 70점(3등급) 선이 보입니다. 반대로 3등급에서 2등급으로 가는 벽이빈칸·순서·삽입이고요. 본인 성적표가 아니라틀린 문항 번호의 분포를 보고 자기 구간을 확정한 뒤, 그 구간만 팹니다.
③ 어휘는 EBS 연계 기반으로.
-수능 영어의 연계는 지문 소재·어휘 체감이 큽니다. 낯선 단어 하나가 지문 전체를 안개로 만드는 게 3~5등급대 독해의실체라서, 연계 교재 어휘를 잡는 것이 이 등급대에서 가장 가성비 높은 영어 공부입니다.
④ 주 1회, 70분 풀타임.
-3교시의 나른함까지 훈련입니다. 격주도 안 됩니다. 주 1회 실전 세트로 시간 감각과 체력을 유지하세요. 국어 편에서 말한 시나리오 원리가 영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 몇 번 유형에서 막히면 넘어갈지, 시험장에서 결정하지 말고 미리 결정해 두세요.
이 네 가지의 총비용은하루 40분 + 주 1회 70분입니다. 국수탐 공부를 침범하지 않는 수준이죠.
이 보험료가 아까워서 해지했다가 12월에 치르게 되는 값이 위 표에 있는 그 숫자들입니다.
현실적인 Q&A TOP 5
Q1. 국수탐 하기도 벅찬데, 영어까지 하면 다 무너질 것 같아요.
그래서 처방이 '하루 40분 고정'입니다. 영어를 주요 과목처럼 하루 두세 시간 하라는 게 아닙니다. 보험은 납입액이 아니라 납입의 '연속성'이 생명입니다. 40분을 만들 수 없다면 그건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시간표의 문제이고, 시간표는 오늘 고칠 수 있습니다.
Q2. 최저를 영어로 잡는 게 여전히 맞나요? 이렇게 어려워졌는데.
여전히 맞습니다. 어려워졌다는 건 1~2등급 얘기고, 3등급(70점)은 위 처방대로 앞쪽 실점만 회수해도 닿는 목표입니다. 다만 '영어니까 그냥 나오는 등급'이라는 전제만 버리세요. 수학(2편)·국어(3편)와 비교해 어느 과목이 내 최저 카드인지는 6모 성적표의 문항별 분석으로 판단하되, 두 개 과목을 3등급 사정권에 두는 이중 안전장치를 권합니다.
Q3. 저는 논술 최저 없는 대학만 쓸 건데, 그럼 영어 버려도 되죠?
PART 4를 다시 읽어주세요. 최저는 피해도 정시는 못 피합니다. 수시 6장이 다 떨어지는 시나리오는 누구에게나 존재하고, 그때 당신이 원서를 쓸 라인이 정확히 영어를 20%씩 반영하는 라인입니다. 영어를 버린다는 건 정시라는 최후의 문 하나를 스스로 잠그는 결정입니다.
Q4. 듣기에서 자꾸 틀리는데 방법이 있나요?
4~5등급대 듣기 실점은 청취력보다 집중력 문제인 경우가 많습니다. 듣기가 나오는 동안 딴 문제를 풀다가 놓치거나, 한 문항을 놓친 동요로 다음 문항까지 흘리는 패턴이죠. 매일 1회분을 '실전처럼 연속으로' 듣는 훈련이 답이고, 2주면 체감이 옵니다. 딴 문제 풀기 병행은 안정적으로 다 맞는 수준이 되기 전엔 금지입니다.
Q5. 지금 5등급인데 수능까지 3등급, 가능한가요?
영어는 상대평가가 아니라서 남을 이길 필요가 없습니다. 70점이라는 고정 과녁만 넘으면 됩니다. 5등급의 실점 분포를보면 듣기와 앞쪽 독해에서 회수 가능한 점수가 15~20점씩 깔려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등급대 중 상승 여력이 가장 큰 구간입니다. 단, 매일 하는 조건입니다. 영어에서 벼락치기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게 이 글 전체의 요지입니다.
마치며 — 방심은 항상 가장 조용한 곳에서 청구된다
수학은 어렵다고 다들 긴장합니다. 국어는 안 오른다고 다들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수학과 국어에서는 큰 방심이 없습니다. 입시에서 진짜 사고는 항상아무도 긴장하지 않는 과목에서 납니다. 그게 올해는 영어입니다.
1등급 4.13%.국어보다, 수학보다 어려웠던 영어. 그리고 당신의 목표 라인으로 내려올수록 무거워지는 반영 비율. 숫자는 이미 석 달 전에 경고장을 보냈습니다. 지금 읽으셨으면, 오늘 시간표에 40분짜리 고정 슬롯 하나만 만드세요. 그게 이 경고장에 대한 유일하게 올바른 답장입니다.
다음 편이 시리즈의 마지막입니다.사탐런 86%의 시대, 짧은 투자로 백분위가 가장 크게 움직이는 영역이자 최저 충족의 마지막 보루 — 황금 동아줄 '탐구'를 다루고, 1~5편 전체를 묶은 4개월 통합 로드맵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5편에서 계속)
본 글의 데이터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2027학년도 6월 모의평가 채점 결과 및 2026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각 대학 정시 모집요강(영어 반영 방식은 2026학년도 기준 예시이며 2027학년도 확정 요강에서 반드시 재확인 필요)을 기준으로작성했습니다.